안세영 없는 코트, 천위페이의 독무대가 시작됐다

 마치 코트 위에 안세영이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그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천위페이(중국)가 인도네시아 마스터스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코트를 지배하며 사실상 우승을 예약했다. 라이벌들이 모두 빠진 대회에서 그의 독주를 막을 자는 없어 보인다.

 

천위페이는 22일 열린 대회 16강전에서 율리 다왈 야콥센(덴마크)을 단 26분 만에 2-0으로 제압했다. 1게임은 21-7, 2게임은 21-9라는 일방적인 스코어가 그의 막강한 경기력을 증명한다. 1회전 역시 27분 만에 경기를 끝내는 등, 매 경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속도전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8강에 안착했다.

 


이번 인도네시아 마스터스는 슈퍼 500 등급으로, 최상위 랭커보다는 랭킹 포인트가 절실한 선수들의 주 무대다. 하지만 세계랭킹 15위 이내 선수들에게는 연간 2개의 슈퍼 500 대회 출전 의무가 있어, 천위페이를 비롯한 일부 톱10 선수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안세영이 2주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체력을 비축하는 동안, 천위페이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기는 영리한 선택을 한 셈이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천위페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안세영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안세영에게 유일하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겼으며, 통산 상대 전적에서도 14승 14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안세영이 빠진 대회라는 점이 아쉬울 뿐, 그의 경기력 자체는 이미 세계 최정상급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천위페이가 이처럼 등급이 낮은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를 쌓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2024 파리 올림픽 이후 부상 치료와 학업 등으로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세계 랭킹 4위 이내의 시드를 유지해야만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너무 이른 시점에 안세영과 맞붙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번 대회 우승은 그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다.

 

여자 배드민턴의 패권은 결국 안세영과 천위페이, 두 사람의 경쟁으로 압축되고 있다. 안세영이 쉴 때조차 라이벌의 존재감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안세영이 없는 코트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천위페이의 모습은 두 선수의 다음 맞대결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